해병대 대통령 경호부대 99부대
99부대의 창설은 언제인지 정확히모릅니다. 그리고 해체된 것도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지막 99부대원었던 선임이 510기 정도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와 당시에 같이근무했던 모든 중대원들은 진정한 99부대원은 아니지만 예전의 전통과 명예를 이어가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99부대 본연의 임무는 어느 정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의 99부대는 중대급 이면서도 중대장의 계급은 소령이었고 부대내에서도 위장복을 입고 99 베레모를 착용하고 대내생할을 했었습니다. 제가 실무에 가기 불과 얼마전까지 연대장님은 전도봉 연대장님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뵙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중대선임들은 연대장님을 전도봉장군님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연대장님은 우리 7중대원들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다는데 자주 7중대에 오셔서 중대원들의 팔뚝을 만져보시고 단단하면 바로 4박5일휴가를 보내주셨고 7중대원의 군가소리는 포항터미날에서도 들려야 된다고 늘상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 중대장님은 아버지라고 표현을 했고 중대장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뇽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죽어야 된다고 선임들이 늘얘기를했습니다. 99부대의 후예들인 32대대7중대 그 어떤 훈련보다도 힘들었고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 무장구보. 단지 완전무장하고 12km를 뛰는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빠른속도 (7중대의 평균기록은 47분에서 48분입니다) 달리는것입니다. 특히 오르막,직선도로,그리고 마지막100m는 완전히 전력 질주를 합니다. 7중대에서 구보를 못하면 생활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소대장 한명이 대회때 낙오를 해서 도서부대로 전출을 갔습니다. 그리고 낙오라는 개념도 대열에서 단 한발자국만 쳐져도 낙오가 됩니다. 물론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토록 무장구보를 중요시한 덕에 9,28 사단체육대회 무장구보는 우리가 항상 좋은 성적으로 우승했습니다. (91년까지 단한번을 제외하고) 2연,3연,7연,포병,사단직할(수색대) 이렇게 5개팀이 나오는데 우리 3연대는 다른 연대처럼 연대전체에서 구보 잘하는 대원을 착출하는 것이 아니라 7중대에서 자체 해결을 합니다. 우린 대회에 앞서 연대장님으로부터 직접 휴가증을 받고 시합을 나갑니다. 그리고 휴가증에는 기간과 날짜를 비워놓고... 우승하면 본인이 원하는 날짜와 기간을 작성합니다. 기간은 최대 19박 20일. 그리고 시합에 나가는 33명 모두 왼쪽주머니에 작은 칼을차고 시합을 나갔니다. (오래동안 훈련을 해와서 실력으로 낙오하는 경우는 없으나 우승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종종있으므로) 하여간 7중대에서 그 어떤 훈련보다도 중요시 여긴 것이 "무장구보"입니다. 사실 99부대라는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 같은연대, 같은대대의 다른 중대와의 적지않은 마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대나 대대군장검열 이라든지 행사가 있을때 7중대는 항상 가장늦게 갑니다. 모든 병력들이 다모인 다음에 99부대 군가를 부르면서....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었어도 무장구보 우승과 항상 기합 든모습을 갖추고있어서 7중대는 연대장이나 대대장님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우리의 자부심은 항상 최고였읍니다.
창설 초기부터 5년간 99부대에 근무했었고 아직도 현역에 있는 동기생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당시의 99부대원들은 나름대로의 프라이드를 가져도 충분할만큼 타 해병부대보다 많은 훈련량과 과업이 지속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창설 초기 5주간의 유격,4주간의 기급특공,연이은 5주간의 공수교육과 점프를 마치고야 99부대원이 되었고 그후로도 강도높은 훈련이 계속됐습니다. 부대 창설 목표가 대통령 관저 경비였더라도 당시 그게 큰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가뜩이나 해군에 통합이후 위축되고 사기가 떨어지는 시기에 수색대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부대가 창설 됐다는데 큰 기대를 걸었고 해병대의 또 하나의 자부심 중에 하나였던 까치부대의 해산이 뒤따르면서 99부대에 거는 애정이 더 커졌습니다. 사실 1년에 겨우 2주정도 대통령 관저 경비하는게 뭐 그리 큰 임무입니까? 전쟁이 나도 그곳에만 이 부대가 있었겠습니까? 99부대원이 받은 훈련과 높은 사기 휘날리는 자부심은 바로 해병대의 전투전력이며 우리의 전투력중 강력한 한 축이 되어 전선에서 휘날렸을 것입니다.
해병구구부대
32대대 자체에서 부대 구성. 32대대 7중대 가 주력이며 보안상 병력은 밝히기가 거북함. 복장은 갈색베레모 주황색 마후라 완전무장에는 위장카바 착용함. 영남권으로 대통령이 뜨면 경호를 담당하며 평시는 일상과업을 수행함. 저는 신원조회 불량이라 주요행사;해사졸업식, 여름휴가 등등은 못나가고 제주도에서 한번, 진해에서 한번 외곽에만 배치 붙은 적이 있음.
이부대는 엄청난 군기로 대대내에서도 목소리나 기압이 분명히 달랐고 간혹 진해 신병차출이 있었다하나 우리때는 없었고 훈련소 소대장은 가지말라는 부대중 구구부대를 우선 꼽았으며 83년 초 그 시절에도 중대고참이 구구부대 이병은 다른 부대 병장급이라는 농담성 얘기를 들려줌. 여하간 엄청난 군기로 해서 연대 무장구보는 7중대가 주력으로 참가하며 항상 사단에서 우승함(참고로 저도 84년 928체육대회때 연대대표로 주전으로 참가, 우승하였는데 7중대 동기놈이 뛰다가 힘이 드니까(쥐가 나서) 왼 팔뚝을 면도칼로 그으며 달려서 팔에 흉터가 가득한데 본게임에서 낙오하면 맞아죽으니까 그런 경우가 흔함)
경호행사는 경호제식교련이라는 이색적인 제식교련을 연습하는데 의장대와 보병중대의 중간스타일이며 상당히 보기좋음. 집총훈련은 집총연무선23개동작이라하여 '우내려 총으로 시작해서 '받들어 총'으로 끝나는 폼나는 과업이 있으며 각종 연대 행사시 의장대식의 기수단을 운영했으며 83년 그 시절에도 별도의 티샤쓰와 빨간 모자가 개인별로 지급되었음
구구부대는 별도로 독수리를 상징으로 했는데 일반사회에서도 가끔 볼 수있는 독수리가 날개펴고 비상하는 모습이며 엄청난 자부심으로 85년 4월초 동기애들이 포항으로 외출나가서 순찰중 시비붙는 졸병헌병애들을 깨트리고 주범 3명은 입창했다가 이튿날인가 탈없이 인수해와서 하루 변소 오물 푸고 끝난 적이 있으며 85년 제가 제대한 이후 수색대로 일부 졸병들이 전출가면서 부대임무가 수색대에 흡수된 것으로 졸병들이 휴가나와서 알려주었음
구구부대는 슬로건이 육탄방어인데 그 의미는 보안상 밝힐 수 없고 단지 단어를 새겨 볼 것
해병구구부대 선서
나는 대통령각하를 경호하는 해병99부대 요원으로서 살아서 비굴하기보다는 죽음으로써 해병의 긍지와 99부대 명예를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자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잎들의 합창 (10) | 2006.11.28 |
---|---|
아크로CC (6) | 2006.11.26 |
조직이 움직이면~ (7) | 2006.11.22 |
오늘 수능인데...난 워크샵 가네,, (4) | 2006.11.16 |
가을이 깊어 갑니다. (6) | 2006.11.13 |